S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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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스님이 말하는 화엄행자의 네 자리 — 늙음과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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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스님이 말하는 화엄행자의 네 자리

늙고 병드는 일이 두려워질 때 사람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종범스님은 화엄경 법문에서 그 자리를 네 단계로 짚는다. 이 글은 그 가르침을 한 흐름으로 따라가며 정리한다.

1. 화엄행자와 다라니 무진보 — 작은 하나에 전체가 깃든다

화엄행자란 화엄경을 믿고, 예경하고, 독송하며 그 가르침을 서원하는 수행자를 뜻한다. 그 뼈대는 일즉일체(一卽一切) —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라는 다라니의 가르침이다.

이 자리에 선 사람은 작은 등불 하나를 올리더라도 그 안에 우주 전체를 올리는 마음을 둔다. 이를 종범스님은 다라니 무진보(陀羅尼無盡寶), "끝없는 보배"라 부른다.

그래서 화엄경을 독송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새로 만들거나 보태는 일이 아니다. 우리 몸과 우주에 **본래 존재하는 비로자나불의 진실한 자성(법성 실상)**을 빛나게 장엄(莊嚴)하는 일이다. 없는 것을 끌어오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을 환히 드러내는 일.

2. 해인삼매 — 일승법계의 자리에 머무는 지혜

화엄행자가 진실한 중도의 세계에 도달하면 **해인삼매(海印三昧)**를 원만하게 이룬다.

해인삼매는 비유로 가장 잘 설명된다. 바닷물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을 때, 하늘의 별과 구름이 그 위에 있는 모습 그대로 비친다. 그처럼 온 세상 만물이 각자의 제자리에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 비로자나 부처님의 한 세계(일승법계)**임을 바르게 아는 지혜.

비유의미
바닷물의 고요함망상 분별이 멈춘 마음
하늘 형상의 명확한 비침만물이 제자리에서 그대로 드러남
일승법계비로자나불의 한 세계 — 본래 부처님 자리

이 삼매에 들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이 멈춘다. 내가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아도 본래 부처님의 세계에 머물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어디론가 가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도착해 있던 자리.

3. 일체유심조 — 두려움도 망상도 모두 마음의 그림자

화엄경의 가장 으뜸가는 게송이 여기 등장한다.

약요지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若了知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보아야 하며,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종범스님은 이 자리에서 한 발 더 들어간다. 중생이 겪는 차별과 고통, 근심 걱정은 모두 생각이 만들어 낸 **망상(妄想)**에 불과하다는 것. 본래 우리의 **법계성(法界性)**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끝없는 광명으로 가득 차 있다.

늙는다, 병든다, 죽는다 — 이 모든 두려움도 결국 마음이 일으킨 그림자라는 것이 이 게송이 말하는 자리다.

4. 일념학인 — 한 생각의 출처를 묻는 공부

법문이 추상에서 구체로 내려오는 곳이 마지막 자리다.

의상스님(義湘)은 부처님의 청정 법신을 알기 위해 **"마음이 일어날 때 그 한 생각을 잘 쓰라(善用其心, 선용기심)"**고 가르쳤다. 한 생각이 일어날 때 그것을 쫓아가지 않고, 그 생각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스스로 돌아보는 사람 — 그를 **일념학인(一念學人)**이라 한다.

마음은 생각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모든 망상 분별을 싹 비우고 멈출 때 비로소 보인다. 생각으로 마음을 찾으려는 한, 마음은 영원히 잡히지 않는다.

그렇게 **마음의 근원을 궁극적으로 깨달은 사람(궁증심원, 窮證心源)**은 삶과 죽음 앞에서도 의심과 두려움이 사라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리에 이른다.

마무리 — 두려움이 사라지는 자리

법문은 네 단계로 흘러간다.

  1. 다라니 무진보 — 작은 하나에 전체가 깃들어 있다는 자각
  2. 해인삼매 — 만물이 제자리에서 부처님 세계임을 보는 지혜
  3. 일체유심조 — 두려움도 모두 마음이 지어낸 것임을 아는 통찰
  4. 일념학인 — 한 생각의 출처를 묻는 실천

화엄행자의 길은 어디로 떠나는 길이 아니다. 본래 그 자리였음을 빛나게 드러내는 길이다. 늙고 병드는 두려움이 사라지는 자리가 다른 어디가 아니라 지금 이 한 생각의 출처라는 것 — 이것이 종범스님이 이 법문에서 가리키는 끝자리다.


출처: 종범스님 화엄경 법문 (YouTube)